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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70 생명의 말씀 베너 들어갈 자리
성경구절 (시편5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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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뜨리고 부서져라

34.주일설교082607

제목: 깨뜨리고 부서져라.
성경: (시편51:16-17)
   (시51:16-17)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저는 이런 찬송을 좋아합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지치고 상한 내영혼을 주여 받아주소서 네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기독교는 마이너스 뒤에 플러스가 있는 종교입니다. 깨뜨리고 부서지고 무너짐을 통해 새로운 궁전을 소유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이십니다. 상한심령을 가지고 예배당을 찾고 고통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부르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제사에 하나님 아버지는 억만금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수많은 교회당을 짓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했기에 예배 잘 드렸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멋진 선교를 이루고 내가 하나님의 선교를 많이 했다고 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잘 예배했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깨드리고 부셔드려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심령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상한 심령입니다. 상한심령이란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전도자가 되었을 때 고백하기를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이 가슴을 가지고 예배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의 드리는 예배를 예배로 보시지 않는 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참 희한한 분입니다. 온전하고 멋지고 비싼것을 보시지 않으신답니다. 사실 하나님은 상한것, 부서진 것, 깨어진 것등을 보시고 사용하신답니다.
   어린아이의 보리떡5개와 생선2마리를 떼어 먹이십니다. 이것이 한 작은 어린아이의 점심밖에는 되지 않았을 분량이지만 주님께서 그것을 부수셨을때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희한한 일을 행하십니다.
   동일한 사건으로 마가복음 8장에보면 떡7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명이 먹은 사건이 나옵니다. 여기서도 역시 그 음식을 부수셔서 나누었을 때 기적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 여인이 긴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며 옥합을 깨뜨립니다. 제자들은 그 비싼 향유를 쓸데없는 곳에 허비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이 깨드린 옥합으로 인하여 장례식을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 옥합이 깨지므로 온 집안에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옥합을 깨드리므로 이 여인은 기념이 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그 깨어진 옥합의 향기로 온 교회를 적실 수는 없는지요?

   주님의 몸이 부서지고 찢기고 깨졌을 때 세상이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부서지므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었습니다.
   1945년 나치에 의해 처형된 본회퍼 목사는 그의 <옥중서한>에 이렇게 썼습니다.
"명령에 따라 고통을 받는 것은 자의로 고통 받는 것보다 쉽습니다. 여럿이 함께 고통 받는 것은 혼자 고통 받는 것보다 쉽습니다.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것이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것보다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자의로, 혼자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받으셨답니다."
본회퍼 목사의 고백은 주님만이 가장 많이 깨지고 부서진 인간이 되셨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가로막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으로 만이 구원이 보장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주님앞에 자신의 모습(심령)을 내려놓고 부셔뜨리고 깨뜨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주님의 마음을 닮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질그릇같은 존재들입니다. 금이가고 모가나고 삐뜰어진 모양을 한 볼품없는 질그릇 말입니다. 하지만 그 질그릇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은 천한 그릇이 되기도하며 귀한 그릇이 되기도합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는 거룩한 그릇은 비싸고 멋지게 생긴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의 자아를 깨드리고 나의 고집과 자존심을 주님 십자가 앞에 부서뜨리는 성도들이 될 때 진정 우리의 그릇 안에 주님이란 보배를 담고 거룩하게 쓰임받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십니다.


2. 상한심령이란 두 번째로 통회한다는 것입니다. 즉 회개를 통한 자기부정입니다.
   범죄한 자신에 대한 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주님이 앞에 계신답니다. 자신의 죄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있고 자기 고집이 등장하면 결코 하나님께 매달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죄악을 느끼면서 슬퍼하고 통곡하지 않는 다면 결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나 긍휼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퍼해야합니다. 돈이 없어서, 명예나 권력이 없어서 슬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없으므로 슬퍼해야 합니다.
   롬9: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권한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진흙과 같은 날 빗으시되 원하시는 모양으로 하소서 주님의 듯대로 만드시고 사용하소서> 하면서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백한 그 고백이 우리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례미야는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애3:49)”
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의 눈에서는 언제 부터인가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이 마른것은 우리의 마음이 말라버렸고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눈물이 말라버린 껍데기 경건>을 우리는 느끼며 살아갑니다.
   구세군의 복음전도자들이 위리엄 부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가 모든 수단을 다 써보았으나 사람들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부스는 “울어보십시오”라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스의 말대로 하였을 때 선교지마다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시발점은 선교사에서부터 교회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며 눈물의 통곡으로 회개하였을 때 부흥의 불이 일어난것을 봅니다.

   바람은 배를 뒤엎는 무서운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배를 전진시키는 원동력도 됩니다. 어려운 사건과 고통은 바람과 같습니다. 신앙인이 철저한 회개의 통곡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전진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고통은 악이 아닙니다. 눈물은 실패가 아닙니다. 통곡하는 것은 연약한 자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올바른 신앙인이 되기 원한다면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한 통곡속에서 그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왜! 우리는 눈물을 잃어버리고 예배합니까? 왜! 우리는 눈물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그것은 내가 슬프고 가슴 아프다고 그래서 울고 싶다고 울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없이는 결코 눈물은 있을 수 없답니다.
리빙스턴은 “주여, 죄 때문에 생긴 이 세상의 상처가 언제 치료될 수 있습니까?”라고 부르짖었답니다. 우리는 내 가족이나 주변의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 가슴속에 생긴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하여 고름이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아파하며 부르짖으며 회개의 기도와 눈물의 기도를 드린적이 언제입니까?
존 웰치라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목사님은 해산의 고통속에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기도했답니다.
다윗은 (시6:6,8,9)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8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욥은 (욥16: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배웠습니까? 눈물도 없고 열정도 없고 능력도 없이 다만 설교를 잘 듣기만 하고 예배당에서 열심히만 하면 좋은 성도로 이름나는 것으로 기뻐하라고 배웠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든 죄가 다 치명적이므로 내다 버리라고 말합니다. 한 괴물이 일곱머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듯 죄는 우리를 그런 모습으로 중독시키는 것입니다. 알콜과 마약과 쾌락에 중독되어 사는 인생이 파멸의 길로 가듯이 우리의 신앙안에 이런 더러움을 회개와 통곡으로 재거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그리스신화에서 엘리스의 왕 아우게이아스는 3천 마리의 소를 기르면서도 30년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양간은 너무나 더러웠습니다. 유리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하루동안에 그 외양간을 청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부근에서 두 개의 강물을 끌어다가 단 하루만에 청소를 마쳤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삶이 교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사회가 통곡하지 않고 쌓여만 가는 외양간의 오물처럼 더럽다면 그곳에다 장미 향수를 뿌린다고 깨끗해질까요? 아무리 좋은 향수를 뿌린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눈물의 강, 기도의 강, 기름부음의 성령의 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청소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정화하고, 가정을 청소하고, 우리의 일터와 사회를 깨끗케하는 청소부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복을 차단하는 죄악, 하나님의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죄악들이 내속에 있는지 점검하고 하나님께 엎드립시다. 통회하며 탄식하며 십자가앞에 나아갑시다. 진정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복된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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